알람이 울린다
5분뒤 알람을 누르고 다시금 잠에 빠져든다
몇번의 상황을 반복하고나선 익숙하게 가물거리는 눈을 비비며
머리맡 선반위 약을 먹는다
우울증약, 안정제, 각종 영양제
담배 하나에 불을 붙이곤, 씻기 위해 화장실을 향한다
보일러가 데워져 따뜻한 물이 나올때까지 담배를 피며
잠깐의 시간동안 정신을 차린다
담배 하나를 다 피고, 이제 샤워를 시작한다
출근 준비를 할 시간이다
여느때와 같은 출근준비였다
요즘 스트레스가 좀 더 많았고,
업무적인 사건 사고가 많긴 했다
그게 내가 출근을 안할 이유가 되진 못했다
샤워를 모두 마치고,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감싸고
화장실 문을 열려고 하던 순간
"..?.."
열리지 않는다
한달전쯤 화장실옆 옷방 문이 열리지 않아
망치로 문고리를 부셨던 기억이 난다
몇시간을 씨름하다 신용카드를 넣어서 중간에 허무하게 열렸던 기억이....
화장실 안
샴푸, 힌스, 바디워시, 치약, 칫솔....
어느 하나도 신용카드 비슷한게 보이지 않는다
일단 문고리를 철컥철컥
어깨로 함께 문을 밀어본다
쾅...쾅...쾅쾅....
침실안에서 들리는 알람이 어느새 8시 40분이란다
지극히 K한국인이자 K직장인인 나는
출근은 어쩌지 잠시 생각해본다
갇힌김에 오늘 쉴까
탈출의 의지가 조금 꺾인다
샤워를 마친지 얼마 안된터라 화장실은 아직
물기에 젖어 쪼그리고 앉아있기 불편하다
문득 어제 친한 직장동료와
최근 힘들었던 업무 얘기와 우울증,
극단적인 생각에 대해 얘기했던 것이 떠오른다
아 젠장
지금은 극단적인 생각을 한게 아닌데
괜히 오해받을거같단 생각이 떠올랐다
화장실에 있는 작은 창문 밖으로 소리쳤다
저기요 누구없어요 여기 사람이 갇혔어요 도와주세요
인근 초등학생들이 놀리듯
네~네~하면서 꺄르륵 소리가 들린다
인근에 초등학교가 있어서 이 집을 선택하여 이사했음을
몇년만에 후회한다
초딩은 초딩이지
하지만 주택가인 만큼 9시가 넘으면
유동인구가 없을것같아
계속해서 소리친다
저기요 누구 없어요 도와주세요 사람이 갇혔어요
문득 화장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옆건물 창문이 보인다
얼마전에 누군가 이사왔는지
항상 불이 켜져있는 창문이였다
낮이든. 밤이든.
몇분이 아닌 몇번 소리쳤을 때
옆집 창문에
불이 꺼진 모습을 처음 보았다
저기요 누구 없어요 여기 사람이 갇혔어요 제발 누가 좀 도와주세요
불이. 탁. 하고 꺼졌다.
낮에도 켜져있던 그 맞은편 건물의 그 방의 불이.
밝은 그 아침
옆건물 불이 꺼진순간
아.
이렇게 사람들이 무심한가
나도 며칠뒤 뉴스에 나오는건가...
샤워하다 갇혀서 옷도 다 벗은 상태로?
집은 쓰레기장인데?
아니 그걸 떠나서 지금 내 집 보증금으로 내 빚을 다 갚을수있나?
가족들한테 그런 짐도 남기면 안되는데
어제 극단적인 얘길 해서 내 의도와 달리 극단적인 상태로 발견되는거 아냐?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이게 뭐지
다시 창문 밖으로 소리친다
여기요...저기요....도와주세요....
아직 따뜻한 날씨지만
문을 열기위해 힘쓰고 땀을 흘리니
목이 마르고, 기운이 빠진다
튜브형태의 치약같은 물건들로 문을 열어보려고 노력한다
방안에서 또다시 알람이 울린다
곧 9시다
9시가 넘으면 이 주택가는 인적이 드물어짐을 알고있다
꼬박 퇴근시간때나 되야 누군가 도움을 줄수있을지도 모른다른 생각이 든다
다시 밖에 소리친다
저기요...누구 없어요... 도와주세요...
사람이 갇혔어요... 제발 좀 도와주세요.....
창문 밑 벽에 쪼그리고 앉는다
눈물이 찔끔 난다
이게 뭐하는거지
밖에서 소리가 들린다
저기요 무슨일이세요
급박하게 창문틀에 매달려 소리지른다
저기 여기 화장실인데 사람이 갇혔어요
어떻게 해드리면 되요
혹시 죄송하지만 신용카드나 비슷한 카드 있으면 창문으로
전달 좀 해줄수있나요?
카드로 열수있어요 옆에 방도 그렇게 열었었어요
죄송한데 그쪽 창문쪽에 들어갈수있는 길이 아니예요 어쩌죠
예상치 못한 난관
우리집 화장실 창문쪽은 사람이 다가갈수있는 곳이 아니란다
여기서 몇년을 살았는데 여태 몰랐을까
그럼 죄송하지만 119에 좀 신고해주시겠어요
여기 주소가 ㅇㅇ동 ㅇㅇ번지예요
네 잠시만요
119에 전화해서 설명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 다행이다
며칠뒤에 발견되진 않겠구나
저기요 119에 제 핸드폰 번호로 신고했어요
119가 올때까지 여기서 기다릴께요
출근하던 길인데 금방오신다고 했으니까 그정도 여유는 있을것같아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눈물이 또 찔끔 나온다
창문 빝 벽에 쪼그리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몸으로 땀흘리고
오들오들 앉아있다
시계도 핸드폰도 없는 나로써는
아 밖에 등교하는 초딩들 소리가 없어졌다.. 하는 시간이 됐을 때 쯤
큰 차량이 골목으로 다가선 소리가 들린다
오들오들 떨리던 몸을 감싸안고
굳은 관절을 문지르며 일어나 창문에 얼굴을 내밀어본다
이미 기운이 없어서
소리치는데 기운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저기요 갇히셨다는분 창밖으로 샤워기로 물 내보내보세요
아까 119에 신고해주신 분에게 위치를 알려주기 위해
샤워기로 창밖으로 물을 뿌렸는데
알려줬나보다
여기예요!
하고 샤워기로 물을 뿌려본다
응? 저긴... 두런두런 얘기하는 소리가 언듯 들린다
현관문 비밀번호가 뭐예요
핸드폰 가지고 계세요
걸칠 옷은 있어요
현관문 비밀번호는 ㅇㅇㅇ이고요
핸드폰은 방안에 있구요
걸칠옷은 없어요
근데 현관문에 번호키 말고 열쇠키도 있어요
아차
번호키만 있었다면 119소방대원분들이 바로 문따고 들어와서
화장실 문을 따줬을텐데
열쇠키는 부셔야 된단다
저기...진짜 죄송한데 열쇠키는 그냥 열쇠기사님 불러주시면 안되나요....
부시면 10만원이 넘고 기사님 부르면 3만원이면 되는데.....
이와중에 자본주의 마인드
이해한듯 119소방대원분들이
현관문으로 들어와서 열어주는 방법 말고,
화장실 창문으로 한분이 들어와서 열어주는 방법으로 합의하셨나보다
안에서는 안열리던 제일 바깥 방충망과 창문을 때어내고
안쪽에 설치된 방범창을 내 도움과 함께 드라이버로 해체한다
혹시 옷 걸칠거 있으세요
걸칠거 있었으면 이미 입고있었을거같은데
라는 생각은 입속으로 삼킨다
...없어요
야 막내야 그거 위에 옷좀 벗어봐라 하시더니
대뜸 소방대원 유니폼을 창문으로 건내주신다
창문을 모두 걷어내기 전에 내가 옷을 걸치길 기다렸다가
입었어요
한마디에 창문은 모두 걷어내고 방범창을 해체한다
소방대원 한분께서 창문을 통해 들어오셨다
몸이 얄상하다
들어온 이유를 알겠다
이것저것 공구로 문고리를 두들겨도 보시도, 해체도 하려고 노력하신다
난 죄송한 마음으로 생각한다
신용카드를 슥슥 넣어서 망치나 단단한걸로 톡톡 하면 열리는데
비슷한걸 시도하려고 페트병을 잘라오셨다
신용카드만큼 힘이 없어서 열리지 않는다
결국 화장실 문고리는 부셨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너무 고생하셨어요 감사합니다
문고리가 부셔진거 뭐 어떠나
현관문 무셔진것보다 저렴하게 수습할것이며
며칠뒤에 발견되어 뉴스에 나오는것보단 날것이다
서둘러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데
뭘 드릴게 없다
냉장고에 있는 생수 몇병과 포도당캔디 몇줄을 집어들고
가운 하나 걸치고 나가서 전달해준다
너무 감사해요 며칠동안 갇혀있을까봐 너무 무서웠어요
너무 감사드립니다 땀흘려 구출해주셔서 너무 고마워요
허둥지둥 소방대원분들께서
창문 원상복귀, 방범창 원상복귀 시켜주시고
괜찮다며 떠났다
9시가 넘은 시각
서둘러 회사 직원에게 전화한다
저 화장실에 갇혀서 2시간만에 구출됐어요
아직 출근 안했었어요?
아
내가 소모품임이 내 편이라고 생각했던 직원에게서 느껴진다
소모품이라고 생각한건 아니겠지만 이전 직장에서 느꼈던 기시감
화이팅 K직장인...
샤워를 하고 나온건지
운동을 하고 나온건자 모를 몸을
주섬주섬 옷을 주워입고 출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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